[시집]옮김-서른, 잔치는 끝났다
2009. 1. 1. 01:02ㆍ감상일지도..
|
소일삼아 읽을 책을 찾아 책장을 뒤지다가 구석에 박혀있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꺼내들었다.
이 책 산 게... 언제더라? 이제 거의 10년쯤 되어가나? 아니, 더 지나났나? 94년도 책인데... 정확히 그 해 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지하철 역의 지하 서점에서 샀었지. ... 고등학교 시절 산 범우사의 문고판 님의 침묵과 선물로 받은 오감도를 제외하곤 내가 가지고 있는-성인이 되어서 산-유일한 시집인 셈이다. 흠... (맨날 도서관에서 빌려다만 봤다)
서른이라... 오랜만에 누렇게 변한 책장을 펴면서 피식 웃었다. 20대에 보는 서른이란 다른 세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른 먹은 사람들은 전부 속물아줌마 아저씨가 아니면 구질구질한 노총각 노처녀였다. 과연 나는 나이 서른에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두려움에도 떨었던 것 같다. 그건 비단 내 얘기만은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서른까지 안살겠다는 다짐을 했었다는 분도 계시니. 오죽하면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가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라고. 나 그 노래 무척 좋아했는데. 그런데 그 서른이 어느 새 지나가버렸다.
실제로 '서른'이라는 나이를 인식하고 지나지는 않았다. 워낙 내 나이는 내 맘대로인데다가 나랑 동갑인 사람이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아홉수를 따질 때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른맞느라 고생 좀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무신경함-때문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일까?
서른에 잔치가 끝났다면 지금은 문닫고 누웠어야 하는 거 아닌가...싶기도 한데.
서른, 잔치 끝난진 오래라지만- 그것도 잔치 나름이다.
남 불러서 먹여야 하는 잔치따위, 계속 되지 않는 게 다행이지. 보여주기 위해, 보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란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화려한 20대가 잔치라면- 난 잔치같은 건 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
.
.
.
앗, 헛소리가 늘어진다.
암튼..오랜만에 본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다시 봐도 '재미'있었다, 20대때에 보았듯이. 재기발랄한 상상들과 망상들, 나름대로 치열해보이는 고민의 흔적들이 재미있었다. (음...옛날엔 '재미'는 아니었던 듯 싶은데?;;;)
사람의 뇌는 나이가 들면서 경험이 많아지는 것 뿐 아니라 구조나 기능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지. 하지만 여전히 시가 달콤 쌉쌀하게 느껴는 것은 아직까진 내 감성이 죽지 않았기 때문인가보다. (아이고, 감사해야지~)
---------------------------------------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최영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주어야 하나
<중략>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감상일지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임)발더스게이트 3ㅡ 되는대로 하다가 망할 뻔 (1) | 2023.11.03 |
---|---|
애니)넷플릭스 약사의 혼잣말 ㅡ 오호,좋네 (0) | 2023.10.29 |
요즘 계속 보는 것들 정리 (0) | 2008.12.05 |
[뮤지컬]라만차의 기사 (0) | 2008.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