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새벽
2014. 1. 24. 21:33ㆍ글귀들
“난 내가 누군지 모른다.”
불쑥 그 말이 튀어 나갔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누군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뱉듯 그렇게 말하자, 패더는 침묵했다. 그는 한 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한숨을 섞어 말했다.
“자신이 누군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그의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그는 나를 보지 않고 술잔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바짝 마른 그의 광대뼈가 도드라져 음영을 만들어냈다.
“내가 어떤 자인지, 나 자신은 모릅니다. 그리고 타인도 모릅니다.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다르고 그 둘은 영원히 겹쳐지지 않습니다.”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몽롱해졌다.
“저는 꿈을 꿉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 이 답답한 도시를 헤치고 날아 오르는 꿈을. 그 때 저는 제가 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꿈을 꾸고 난 뒤 나는 내가 새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요. 하지만 어쩌면 저라고 하는 인간은 새가 꾸는 꿈일 지도 모릅니다. 아니, 또 어쩌면 새가 꾸는 꿈을 보는 또 다른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또 그러한 꿈을 꾸는 드래곤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오크일 수도. 혹은 또 다른 무엇일지도.”
“그리고 어느 순간, 새벽이 찾아와 산산조각을 내겠지.”
나는 나도 모르게 차갑게 내뱉었다.
--------------------------------------이수영 사나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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