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콘크리트 유토피아-야만과 문명의 사이에서

2024. 3. 24. 09:53감상일지도../영화

 

본 것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보고 나서 뭔가 깨름칙한 느낌과 정리가 안되는 생각에 리뷰(?)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대강 정리되었을 때는 그냥 잊어버리는 바람에 이제서야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저런 원리론적 이야기에 익숙한 나로서는 감정이입이 그다지 쉽지 않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납득은 되나 공감은 하나도 안되는 원색적인 인물들-이 참 불편한 영화였다. 물론 영화의 말미에 김영탁이 내뱉은 말이 뭔가 정치색을 가장한 패륜일당의 말인듯한 뉘앙스를 느껴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삼일한이 떠오르는;;;;)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결국은 '문명인'으로서의 불편함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일부인권이 흘러넘치는 세상은 만들어진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길게 봐야 20년 안쪽? 물론 그 사이에 사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일반적인 우리의 '인권'이나 '윤리'의식은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에 알맞는 의식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안그러면 도태되어버리니까. 그런데 우스운 것이 어느 순간까지 쌓아가던 이 의식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익숙함을 빙자하여 굳어져버리고 결국엔 흔히 말하는 '세대차이'를 만들어버리고 만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고통을 피하기 위한 꼰대의 등장이랄까....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문명(?)에 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윤리와 도덕, 법과 질서를 따진다. 물론 그 문명의 유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현대에서는 (일부)당연히 되는 여러 가지(자유, 인권, 평등, 약자보호 등)들이 유지되기 어려운 영화 속의 상황에서는 솔직히 맞지를 않는다. 하지만 현재가 안온한 아파트 일부 주민들과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들 없이는 우리가 가진 현재가 흔들리게 되니까.

영화 속의 상황은 한마디로 '야만'이다. 강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약자는 도태되는 사회. 생존을 위한 사회에서 우리의 정신적인 가치들은 의미를 가지기가 너무 어렵다. 

영화 속과 같은 상황에 완전히 동화되기를 꺼리는 관객의 마음. '그래도 그렇지....'라고 말하며 '우리만의 유토피아'를 유지하고 싶은, 더러운 것은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영탁의 욕설은 그것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오늘날의 현실은 누군가에게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이고, 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 바깥의 거친 세상이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것, 보고 싶은 것, 보려하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영화는 참 불편하다.

영화가 나에게 그렇게나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은 지금의 내가 있는 현실이 어느 곳인가라고 묻는 듯한 질문에 내가 뭐라고 딱 대답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까지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눈을 감고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도균처럼 망가진 세상을 똑바로 보라며 뛰어내릴 용기가 없는 사람이니까.

영화는 영화일뿐이고 과몰입은 나쁜 것이다. 너무 이런저런 의미를 붙일 필요는 없겠지. 

부디 살아가는 동안 더이상의 현실 속 '야만'을 보게 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